청중: 사회운동을 계속하는 원동력은 사회를 반복해서 바꾸고 있다는 성취감으로 해야 하나요?
채효정 선생님: 아니요, 그런 성취감으로는 못 해요. 왜냐하면 사회가 너무 안 바뀌잖아요. 그죠? 너무 절망하는데요. 그냥 옳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어떤 바뀔 수 있는 가능성, 확률, 이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믿음 믿음의 영역이긴 한데 그건 가능성, 확률적 가능성은 아닌 것 같고요. 내가 어떤 사회 전체를 바꾼다고 하는 것보다 저한테는 이제 내가 나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면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커요. 그다음에 역사 속에서 이제 계속 이제 보여줬던 거, 사실은 지배자들이 은폐한 것이긴 하지만 무던히 승리하고 무던히 패배해 왔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어느 순간에 일시적으로 승리한다라고 하면 또는 일시적으로 해결이 된다라고 하는 그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나 성취감보다는 저는 이 끈질김에 대한 경의로움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지는데 왜 하냐고? 그리고 마침내 승리하잖아요. 그렇게 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그렇게 다 망해버렸는데 이 사람들은 또 다 어디서 나타난 사람들이냔 말이에요. 공교육 시스템이 그렇게 망가뜨리는데도 또 살아나잖아요. 그런 인간에 대한 경애심, 경이로움 그런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청중: 근데 이렇게 되게 많은 사람들이 우릴 보고 틀렸다 말하는데 옳다는 확신은 어디서 얻어요?
채효정 선생님: 우리가 옳다고 얘기를 해 주잖아요. 그 책이 있어요. ‘우리가 옳다.’ 싸우는 노동자들이 쓴. 그래서 3명이 중요해요. 밖에서 아무리 너네는 틀렸어 너네는 되게 이상주의자야. 너네처럼 그렇게 살다가는 낙오될 거야라고 말할 때 “아니야. 너네가 진짜 훌륭해. 난 너를 지지해. 니 말이 맞지?” 아까 제가 강의할 때 그랬잖아요. 이런 재정위기 이런 것들은 누구의 목소리냐라고 우리의 목소리로 변환했을 때 여러분들이 박수 쳐줬잖아요. 와 했잖아요. 그런 신호들을 계속 보내주면서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를 더 크게 만들어가는 그게 되게 중요해요.
청중: 너무 외로울 땐 어떻게 하셨어요?
채효정 선생님: 후배한테 전화해서.
청중: 벗으로 전화하세요.
채효정 선생님: 인제는 밭이 있어가지고요. 저는 이제 그게 또 되게 큰 힘이 됐고요. 저한테 병원이었어요 그게. 그 치유의 장소이기도 하고 힘을 주는 장소이기도 했고 근데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인 것 같아요. 똑같이 인제 에있었는데 재작년하고 작년에는 되게 떨어진 집에 살았거든요. 고라니 친구들하고 멧돼지 친구들하고, 다람쥐 친구들이 많았지만 새삼 느꼈어요. 또 인간에게는 인간 친구가 정말 필요하다. 인간의 마음이. 이제 이사했는데 친구가 사실 다 제일 중요한 의지처가 아닐까요? 그리고 내가 또 되어주는 거 그런 의지처가? 그다음에 그걸 개인적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요새 감축과 적응이라고 하는 이제 기후위기 대응 목표를 그게 사실 긴축 재정 목표하고 똑같은 거를 지원한 거거든요. 감축과 적응을 누가 감축하고 누가 감축 당하는데. 일괄 적응을 요구하고 일괄 적응을 당해야 되는데 그런 질문들을 상실시킨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관리주의 용어 말고 아까 이제 얘기했잖아요. 재정 위기도 관리자 목소리고, 용어였다고 그거를 우리들 용어로 좀 바꿔보자라고 해서 적응과 감축을 돌봄과 저항이라고 하는 걸로 바꾸어서 이제 우리 목표로 삼자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저항과 돌봄의 어떤 장소, 공동체, 근거지 그런 걸 만들어내는 게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대학도 그런 자치 공간이 되게 많이 없어졌는데 이 잔디밭도 중요하고 항상 있는 공간이 있잖아요. 구멍이 그때그때 열릴 수도 있지만 또 언제든지 찾아가면 열릴 수 있는, 좀 이렇게 똑똑 두드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고 지켜가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아요.
청중: (질문)
채효정 선생님: 대학을 다니는 척을 하고 있어요. 그렇죠 수업을 듣는 척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게 정말 쇼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는 거대한 무대인거고요. 교수들도 마찬가지예요. 가르치는 척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사실 얼마나 관계를 또 공허하게 만들어 여러분 다 알잖아요. 교수는 수업하기 싫어 죽겠고 근데 와서 이제 서 있는 거고 밥줄이라, 학생들도 마찬가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난 왜 이러고 있어? 저딴 소리 왜 들어? 하면서 이제 듣고 있는 거고 뭐 때문에? 학점 따고 졸업장 따야 되기 때문에 이런 이제 거대한 어떤 그래서 기만극이 우리를, 인간성을 파괴해요. 관계를 되게 공허하게 만들고 그거를 이제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뚫고 나갈 수 있을까, 돌파할 수 있을까 이런 이제 고민인 거잖아요. 저는 교수랑 싸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거는. 교수하고 강의실에서 싸워요. 적당한 전략이 필요한데 싸울 가치가 없는 교수랑 싸우지 마세요. 너무 피곤해지거든요. 나의 감정과 에너지와 어떤 시간과 역량을 과연 여기에 이제 쏟아부을 만큼이 되나 안 되나 좀 판단을 해가지고요. 적당한 전략을 구사하세요. 근데 싸워야 된다. 싸울 만한 기술들은 좀 치열하게 학생들이 이제 싸워주면 좋겠어요.
저가 그랬거든요. 제가 교수할 때 제일 무서운 존재가 또 학생이기도 했고 다른 옆에서 교수들이 막 비판을 하거나 당신 말은 틀렸어라고 얘기하면 너는 뭔데? 아니 교수님 원래 또 자기 전공 분야에 약간 나와바리에서의 꼬장꼬장한 자기 고집들이 있어서 그런 거 잘 안 통하는데요. 학생이 교수님은 뭐 하셨는데요? 하면은 엄청 쫄아요. 제가 어떻게 보면 대학 운동이라고 한 거를 시작하게 되었던 계기를 만들어준 것도 학생이었어요. 예전에 포럼을 했거든요. ‘기업화된 대학, 대학은 어떻게 기업이 되는가’라고 하는 포럼을 정치학과 학생들이 개최를 해가지고 거기에 이제 제가 토론자로 갔어요.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대학 기업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어서 이런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됐고 중앙대는 두산에 먹혀서 구조조정이 이렇게 됐고 경희대 구조조정 막 이렇게 설명을 했단 말이에요. 다 듣고 다른 사람들은 다 끄덕끄덕하고 그랬구나 하고 막 박수를 치는데 저기서 한 놈이 나를 꼬나보고 있는 거예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막 이렇게 꼬아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왜 저러지 왜 저래야지 약간 쫄리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에 질문을 하는데 끝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금 교수님이 말한 거 다 맞는 말이고 나 다 동의한다. 나도 반은 알고 있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대학에서 당신은 뭐 하고 있는데. 그래가지고요. 머리털이 막 서고 식은땀이 쫙 나면서 그날 집에 와가지고 정말 밤에 잠을 못 자고요. 학교를 못 가겠고요. 떼굴떼굴 굴렀어요. 그러니까 그런 존재예요 학생들이, 자기들이. 대학에도 그런 교수들이 있을 거예요. 어쨌든 그런 교수들이 있을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어가고 젖어 들어가고 기득권이 하나둘씩 생기다 보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되거든요. 슬금슬금슬금 이렇게 나온단 말이에요. 그거를 찌르고 뚫어서 환기시켜주는 존재가 사실은 학생들이고요. 그래서 교육이 일방적 교육이 아니잖아요. 그냥 많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 세워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거, 서로 배움이 일어나는 현장이 교육 현장이고 저는 고등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거는. 그래서 강의실에서 싸워 주시구요. 그런데 지금 강의실 분위기가 또 많이 바뀌었죠. 그렇게 싸웠다가는 엄청 또 이제 공격당하거나 이제 고립되잖아요. 메일을 쓰세요. 여러가지 전략을 취할 수 있는데 3명이 있어서 강의실 분위기를 안전하게 내가 이제 강의실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겠다 할 때는 그렇게 하고 지나가다 슬쩍 얘기해도 돼요. 그래서 그런 발화들을 계속해서 많이 해주는 것이 아까 말씀하신 대학의 공기를 바꾸는 것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