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뭐 제가 이런 식으로 말했듯이 많은 성소수자,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소위 사회화라고 불리는 그런 것의 어떤 중요한 통로인 지역과 학교에서부터 차별과 소외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청소년기의 아픈 기억과 거리를 두고자 또 자기가 살던 지역과 커뮤니티를 황급히 떠납니다. 또 주로 그래서 대학이 주로 이제 성소수자나 아니면 소수자 운동의 어떤 중심 거점이었던 이유도 저는 청소년기를 포함해서 생활세계의 어떤 억압적인 경험으로부터 해방 내지는 거리두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대학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도 트랜스젠더도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소수자로 잘 인정받으면서 살기 위해서 대학에 왔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소수자의 자리로 할당된 저의 특정한 구질구질한 구역에서 벗어나고 그 자리를 부정해야 했습니다. 대학에 오게 된 계기는 분명 소수자됨에서 비롯됐지만, 대학에 오는 과정은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답지 않게 노력하는 과정이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학에 온 만큼 사람들이 너는 뭘 하고 뭘 하고 자랐는지, 누구와 어울렸는지, 왜 대학에 왔는지 이런 거를 물을 때면 버겁더라고요. 그러니까 대다수의 경우에는 만약 내가 15살 때 성별을 바꿨는데 자퇴하고 가출하고 막 집 밖에서 전단지 뿌리면서 막 화장실에서 어서 터지고 막 이러다가 공부가 그나마 쉽다는 걸 알고 대학에 왔어 이러면 뭐라고 하겠어요. 다들 경악할 게 뻔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말해도 아니면 그걸 참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이질적인 삶일 거고 그래서 저는 매번 말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사실 근데 한편으로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언젠가는 버스에서 너무 힘들어가지고 학교에서 울면서 트랜스젠더 친구한테 한 번 전화를 건 적이 있습니다. 그냥 자퇴하고 긴급지원센터에서 사는 그런 트랜스젠더 친구한테 전화를 건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친구가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아니 ‘대학에 온 게 어디냐. 뭐 그딴 걸 가지고 찡찡대냐” 그렇죠, 사실은 맞는 말이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이제 내가 자라왔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사람들과는 어떤 공감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친구들이 그냥 한 자리에 남아 있으면 모르겠는데 수술이 끝나고 세상에 숨어들기 위해서라도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정신병 막 덕지덕지 달고 있는 트랜스젠더 막 이런 사람들과 ‘나 이제 정상인처럼 살고 싶다.’ 이런 이유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제 그러니까 그렇게 연락하지 않고 떠나는 친구들도 많고 아니면 그런 친구들도 많았어요. 수술이 끝나고 나한테 남은 거는 그냥 몸뚱아리 뿐이다. 나는 대학도 안 갔고 나는 할 줄 아는 알바도 없고 편의점 알바도 못하고 그러니까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 평생 소원이 수술이었는데 수술이라도 했으니까 ‘내 이제 뭐 살아도 여한이 없다.’ 하면서 자살하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소수자 대학생으로서 어디에도 돌아갈 수 없다는 감각을 늘 느꼈던 것 같아요. 속할 수 있는 자리가 대학에도 없고 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도 없고 그런 과정 속에서 저를 위한 자리 또는 저만의 역사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뭐 한편으로는 소속감 같은 걸 기대하면서 대학에서 소수자 운동이나 아니면 뭐 소수자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습니다. 근데 학소위분들도 아시겠지만 사실 이 학교 안에 성소수자 동아리나 아니면 소수자 운동이라는 게 갈수록 고인물만 남잖아요. 아니면 사실 이 고인물만 남거나 아니면 그냥 사실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라고 하지만 사실 가서 게이들밖에 없고 게이들 그냥 술 먹고만 있고 맨날 술 퍼 먹으면서 막 설거지도 안 하고 이것도 아무튼 그런 경우들이 많잖아요. 사실 그러다 보니까 막 이제 막 소란스러운 소동을 일으키려고 하면 나 여기 그냥 게이들끼리 술 먹으러 온 거였는데 막 인권운동 이런 거 하네 짜증 나네 막 이러면서 도망치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뭐 다 같이 소란스러운 소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할 때도 되게 적은 수의 인원밖에 없으니까 막 역량을 엄청 발휘해서 막 싸우려면 다들 소진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막 싸우는 과정에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나도 저기 들어가고 싶기는 한데 저기 진짜 개쩌는 양반들만 있는 모양이다, 나 같은 이런 초짜들이 들어가면 인권 이런 거 못 지킨다고 막 뚜까 팰 것 같다.’ 약간 이런 인식들이 계속 늘어나는 거죠. 그래서 약간 그런 것 같아요. 계속 이제 모호한 몸부림 같은 거를 이제 반복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 요즘 대학사회에서 백래시 같은 거는 더 심해지고 있고 그럴 때면 우리는 백래시 같은 게 갑자기 쏟아지면 깜짝 놀라가지고 당장 닥친 어떤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서 어떤 수세적인 모습을 보일 뿐이고 그런 과정에서 되게 다들 지쳐가고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그런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공격하는 외부보다 우리 스스로가 약간 제대로 싸우지 못하니까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소진되고 소수자 운동에는 희망이 없구나 또는 대학에서 뭔가를 하기에는 희망이 없구나라면서 이제 그냥 염세적인 어떤 투정 같은 거나 부리고 있고.

저도 인하대 성폭력 사건 당시에 그런 과정들을 쭉 거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너무 지쳐서 진짜 요즘 인간들 다 이 모양이구나 하면서 그래서 너무 지쳐서 휴학하기를 결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튼 막 대학에서 소수자로서도 와가지고 후련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왠지 모를 이런 부채감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들 그리고 소수자로서 어떤 정치를 매개로 대학에서 소속감과 대안을 찾고자 했던 저의 기대 그런 게 다 이제 증발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오히려 소수자에게 열린 공간이라고 믿었던 그런 대학에서 오히려 우리 자신만의 한계를 그런 발견하는 상황들이 반복된 거죠.

물론 이제 그 대학 밖에도 제도 중심의 활동들이 있습니다. 근데 이제 제도 변화를 위해서는 특히 소수자 문제에 관련된 제도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당사자를 조직하고 또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사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그렇게 틀어잡고 있는 상황에서 되게 변화가 더디잖아요. 그러니까 커뮤니티에서는 ‘아니 왜 괜히 나서가지고 시끄럽게 만드냐. 인권 활동 같은 거는 능력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어차피 해도 안 변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먼 발치에서 우리를 그냥 쳐다보는 그런 경우들이 그냥 계속 발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조직 정치가 성소수자 운동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런 상황들 속에서 그리고 특히나 코로나 이런 어떤 조건들 속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성소수자 운동 특히나 성소수자 계약 운동 안에서도 무기력과 파편화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정리하면 어떤 대학의 주류적인 분위기 또 소수자 커뮤니티 안에 있는 어떤 각자 도생의 정서 또 소수자 대학생으로서 커뮤니티 또는 대학 공동체 어디에도 발붙이기 어려운 상황, 하지만 소수자 운동을 또는 소수자로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대학 외에는 또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 그런 상황 이걸 좀 돌파하는 대안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들을 했습니다. 이제 제 다음 강연으로 채효정 선생님께서 강연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에 채효정 선생님께서 그 ‘워커스’라는 잡지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그러니까 소위 청년학생 담론이라고 불리는 것들 또는 청년 학생 운동이 사실 대학에 존재하는 청년만이 뭔가 좀 그러니까 약간 대학을 통해서만 대표되는 그런 장면들, 대학을 통해서만 그런 상회되는 상황들을 지적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대학에 존재하는 청년만이 청년으로 표상되는 그런 상황들, 이 상황은 저는 대학생 성소수자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약간 성소수자 문제가 그러니까 이런 대학이라는 장을 중심으로만 해서 이제 포장되기 시작하면 사실상 남는 거는 무기력의 이미지 또는 소수자 안에도 존재하는 대학에 누가 갈 수 있고 또 대학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어떤 계급적 위치에 있는가 이런 문제를 가리는 문제가 이제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동시에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 운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변희수 하사 사건이 그렇습니다. 저는 변희수 하사를 16살 때 처음 만났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이제 저는 1년 일찍 대학에 입학을 해가지고 19살 때 이제 튤립연대 활동을 하면서 저희가 이제 운영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소통방에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같이 한강공원 가서 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저는 정말 그분이 영웅이라고 느꼈어요.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고 정말 그냥 평범한 사람들 아니면 그냥 진짜 그 누구라도 그냥 할 수 없는 그런 결단을 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을 만들지 않는 운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고 싶은데 솔직히 변희수 하사 사건 터졌을 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어떤 반응이 나왔을 것 같으신가요?

청중: 걱정? 슬픔?

한성님: 아마 상상도 안 되시겠죠. 근데 뭐 아무튼 정말 마음이 아프다, 지지한다 뭐 어쩌고 이런 것들을 많이들 상상하실 것 같아요. 제가 당시에 변희수 하사 사건이 있었을 때 그리고 숙명여대 사건이 있었을 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쫙 돌아왔습니다. 이제 뭐 그냥 소위 트위터 같은 데부터 시작해가지고 이제 저 맨 막장에 있는 디시인사이드 여장 갤러리까지 다 가봤는데 사실은 트위터 이런 곳 같이 소위 인권 이런 이야기하는 곳 아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그런 반응들이 되게 많았어요. 이게 한편으로는 진짜 약간 반반이었어요. 이 의견하고 다른 의견하고. ‘아니 왜 괜히 나서냐. 우리 숨어서 살고 싶은데 왜 괜히 나서가지고 깝치냐.’ 이런 의견들 엄청 많았습니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이렇게 파편화되어 있고 각자 도생의 정서만 이렇게 주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 운동이 어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존재하는 트랜스젠더가 곁에서 바로 호흡한다는 그런 감각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어떤 누군가를 영웅으로만 만드는 그런 운동은 사실 진짜 정말 변희수 하사로서는 그게 저는 제일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그냥 단순히 뭐 사람들이 그냥 어떻게 떠들고 말고 이런 걸 떠나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터져나오는 그 반응들이 정말 제일 가슴 아팠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변희수 하사같이 막 이렇게 혹은 숙명여대 사건같이 정말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어떤 의제들이 던져졌을 때 이것이 어쨌든 커뮤니티가 뒷받침이 돼서 더 큰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되는데 이게 어떤 한 영웅이 그냥 싸우는 그런 운동이 돼버리면 그냥 휘발되고 마는 거죠. ‘그냥 그런 영웅이 있었다’라고 끝나고 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떤 그냥 무언가를 외치고 ‘이런 제도가 있어야 된다. 아니면 뭐 이런 트랜스젠더들이 여기에 있다.’ 이런 운동을 넘어서 가까운 우리의 문제부터 직접 해결하고 효능감을 발견하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나. 당사자와 바로 곁에서 호흡하고 참여할 수 있는 내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또는 내가 막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내가 이 세상에 목소리를 외칠 수 있고 이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것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들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내가 대학 안에 있는 소수자다.’ 따위의 감정에 매몰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떤 주류적인 대학의 무력한 소수 그게 영웅 그냥 대자보를 붙이는 대단한 사람으로서건 아니면 그냥 천대받는 사람으로서건 그냥 대학 내에 있는 소수자라는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 의식에 매몰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학 담장 안에서 저는 소수겠지만 대학 바깥에서는 저는 소수자치고도 대학생이고 또 대학에 오게 된 계기 자체가 소수자로서 좋은 삶의 어떤 경험을 쌓아나가는 일이었던 만큼 저는 그 역할을 맡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의식을 트위터 아니면 뭐 이제 대학에서 소수자 운동을 하다가 나가 떨어져가지고 이 지친 양반들 아니면 뭐 이제 소수자 대학생으로 사는 동지들과 지난 12월부터 이제 노동, 정치, 사람 청년연대팀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를 이제 시작했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이제 청소년 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가 사실 2020년에 3개월간 학교 밖 트랜스젠더를 위한 검정고시 교실 만들기라는 이제 프로젝트를 3개월간 진행해가지고 실제로 이제 교육을 진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튤립 교실의 어떤 활동 경험을 참고해가지고 소수자로서 나름 어떤 다른 공동체를 꿈꾸면서 대학에 왔는데, 이 대학의 주류적인 이제 분위기에 이제 신물이 나는데 또 한편으로 같이 이야기를 나눈 분들 중에는 자퇴 출신자 분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교육을 통해서 이렇게 재생산되는 어떤 퀴어로서의 수치 또 그것이 대학 생활에 미치는 영향, 멜랑콜리 그리고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지 이런 것들에 관해서 정말 깊이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